이성계가 ‘보우 마스터’라 불리는 정사 기록

활 실력이 매우 뛰어났다고 알려진 태조 이성계.

장거리 저격뿐만 아니라 백병전에서도 말을 타고 돌격하면서 활로 적을 물리쳤다고 하는데..

놀랍게도 야사뿐만 아니라 정사에도 이성계의 뛰어난 활 솜씨가 기록되어 있다.

이성계가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함흥본궁.

1. 동녕부의 추장 고안위가 오녀상성에서 웅거하면서 항전을 하자 이성계는 편전(애기살)을 이용하여 성의 병사들 얼굴에 70발을 쏴 70명 모두 맞췄다.

이를 본 주위 성들이 항복했는데, 그 수가 1만 여 호나 되었다.

오녀산성을 점령한 후, 요동성 전투에서 처명이라는 적장을 사로잡기 위해 한발은 투구에, 한발은 허벅지에 맞춘 후 “마지막 한발은 니놈 머리통에 날리겠다”라고 하자 처명은 즉시 항복

이후 이성계의 부장으로 활약하며 황산 대첩때도 참전했다.

2. 황산대첩 때 왜구와의 격전을 앞두고 150보 떨어진 곳에서 투구를 놓아놓고 세번 쏴 세번 다 맞추어 군사들의 사기를 높였다.

1보가 대략 1.8m. 즉 270m 거리를 백발백중한 것이다.

3. 원나라에서 활을 잘 쏘기로 유명한 찬성사 황상이 이성계와 누가누가 잘 쏘나 겨뤘다.

황상은 50발을 연달아 맞춘 후 맞추기도 못맞추기도 했는데, 이성계는 전부 다 맞추었다.

4. 여진정벌 당시 온 몸에 갑옷을 두른 장수가 달려오자 투구를 쏘아 맞혔는데, 그 장수가 놀라 입을 벌리자 입 안으로 화살을 쏘아 죽였다.

‘1362년 그는 선봉에 서서 말을 탄 채 장수만 골라 쏘는 맹공을 펼쳐 마침내 홍건적의 괴수 사유(沙劉)와 관선생(關先生)까지 참살하고 수도에 제일 먼저 입성해 탈환하는 큰 전공을 세워 두각을 나타냈다.

이성계는 보통 사람이 쓰는 것보다 훨씬 튼튼한 강궁을 사용했는데,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은 “사람이 쓸 물건이 아니다”라며 감탄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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